펜수채
트빌리시는 가을이었다. 여느 때라면 낭만을 발견했을 아름다운 가을 낙엽 사이에서 나는 우울을 찾았다. 여행의 중간, 나와는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권태가 덮쳤고 나는 무기력하게 휩쓸렸다. 난파한 여행자의 몰골로 높다란 건물의 옥탑방을 빌려 방 한구석에 틀어박혔다. 언제나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야 하는 매일의 도전이 버거웠다. 그렇게 틀어박힌 옥탑방에는 비스듬한 지붕을 따라 만들어진 사선의 창이 있었다. 스스로를 추스리는 데 전념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있노라면 창 너머 조지아의 하늘이 보였다. 아침해가 뜨면 저절로 눈이 떠졌고, 어느새 노을이 내렸다.
그렇게 보낸 며칠 째의 밤, 비가 내렸다.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소리와 질감을 감상하던 어느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네모난 창에 색색의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나는 창을 열어 비와 함께 쏟아지는 불꽃을 보았다. 우울함도, 무기력도, 모든 지쳐버린 것들이 폭죽과 함께 창 밖에서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다.
조지아, 트빌리시